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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1월 22일 (금)

봄날을 이탈한 바다가 그 곳에 있다

보트랑 조회 : 4,660
봄날 시름은 술보다 진하다고 옛 시인들은 노래했다. 세상이 온통 술통 속처럼 누룩내를 풍기는 늦은 봄날, 차오르는 시름을 견딜 수 없다면 바다를 보러 가자. 꽃이 지고 봄날이 가고 있거늘...바다는 무심하다. 세상의 봄날과 달리.

그 바다는 오히려 생생하게 퍼덕거린다. 7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가 그 곳에 이르면 대뜸 어깨를 탁 치는, 기운 넘치는 그 바다와 만난다. 배들은 기우뚱거리며 항구로 들어서고, 겁없는 갈매기떼들은 색색의 깃발을 단 만선의 배 위를 낮게 날며 끼룩거린다. 허리까지 오는 장화를 신은 어부는 태우던 담배를 끄고 밧줄을 던져 내린다.

울진군 남쪽에 자리한 후포항. 밤새 잡아 온 고기들이 내려지고 머리수건을 쓴 아낙네들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손질을 한다. 펄쩍펄쩍 뛰는 오징어들은 상자에 담겨서도 먹물을 쏘아댄다. 얼마 전까진 대게잡이배가 바빴다. 대게잡이가 허용되는 시기인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이 곳은 영덕대게 집산지인 강구항과 함께 사람들로 붐볐다.

대게축제가 막을 내려도 여객터미널이 있는 이 곳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. 부둣가 어시장에는 도다리, 우럭, 광어 등 싱싱한 횟감을 싸게 살 수 있다. 즉석에서 회를 떠 바닷가로 자리를 옮겨 피크닉 기분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.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술잔을 기울이는 풍류객들이 이 곳엔 유난히 눈에 띈다.

후포항 뒤편 낮은 언덕배기에 세워진 후포등대도 정겹다. 부두 끝자락에서 동북쪽으로 난 해안길을 따라가면 등대가 있는 산언덕으로 이어진다. 약간의 어린이 놀이시설과 매점이 있고, 등대관리소 담벽을 돌아 남쪽 언덕에서면 후포, 울진 일원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. 고깃배들로 붐비는 후포항 전경과 여객선터미널, 후포해수욕장과 멀리 영덕·강구 해안까지 풍경이 이어진다. 한쪽으론 망망대해,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.

봄볕 속에서 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김중식의 시 <이탈한 자가 문득>이 떠오른다.

‘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, 그 똥, 짧지만,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,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.’

*가는 요령

서울 - 강릉 - 동해 - 7번 국도 - 삼척 - 죽변 - 울진에 이른다. 혹은 포항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향하면 영덕 - 영해 - 울진 후포항이다. 후포항 여객선터미널에는 여름 성수기와 명절 때 울릉도행 여객선이 1일 1~2회 뜬다.

*주변 볼거리

관동팔경 중 관동제일루라는 망양정을 비롯해 평해 월송정이 부근에 있다. 여유있는 걸음이라면 동해 제일의 백암온천과 성류굴도 돌아볼 수 있다.

이준애(여행 칼럼니스트)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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